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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docu story

국제 경쟁력이 있는 다큐멘터리?

by 에밀레 2010. 3. 18.

국제 경쟁력이 있는 다큐멘터리?

-이성규 독립PD가 미디어스에 쓴 글입니다.

“다큐멘터리가 없는 나라는, 앨범이 없는 가족과 같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칠레의 다큐멘터리 감독 파트리시오 구스만이 남긴 말이다. 최근 한국은 때 아닌 다큐멘터리 열풍이 일고 있다. 지난해엔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가 극장 상영을 통해 3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더니, 올 초엔 MBC의 <아마존의 눈물>이 평균 시청률 20%를 넘어서는 열풍을 일으켰다. 불과 일 년 사이에 대한민국 국민은 다큐멘터리 애호가가 됐다. 전 국민적인 앨범 만들기 열풍이 일고 있는 셈이다.



방송사는 드라마 한류에 힘입어, 영상 콘텐츠 강국을 꿈꾸고 있다. 영상 콘텐츠는 한류를 일으켰던 드라마부터 시작해서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 그리고 TV 예능 교양 프로그램 등을 말한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로서 ‘판매재’란 단어에 거부감이 없잖아 있긴 있다. 하지만 관객과 시청자가 있을 때 다큐멘터리 영화 및 방송의 존재 의미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시장의 확대 및 수출은 긍정적인 전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관객 동원, 방송은 시청률이다. 그리고 국내 시장을 기반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 수출은 영상 콘텐츠 강국의 진입로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진입로를 잘못 들어선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지난 일 년 사이에 열풍을 일으켰던 <워낭소리>와 <아마존의 눈물>은 국내 시장에서 성공적인 다큐멘터리였다. 미안하지만, 이 열풍은 단지 국내용이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범주를 벗어나면, 결코 이렇다할 반향을 일으키기 힘든 콘텐츠다. 여기에 “무슨 소리냐?”며 바로 반박을 할 이는 많을 것이다.

<워낭소리>는 처음부터 국내 시청자와 관객을 겨냥해 제작된 것이다. <워낭소리>에 흐르는 정서는 한국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내러티브다. 그러기에 국내시장에 머무를 수밖에 없던 다큐멘터리였다.

그런데 <아마존의 눈물>은 다르다. MBC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아마존의 눈물>은 MBC의 창사 특집이면서 ‘수출을 염두에 둔 프로그램’이다. 5부작 가운데 촬영기를 담은 1부와 5부는 글로벌 마케팅의 가능성이 없다. 그렇다면 2부부터 4부까지 3편, 즉 본편 3부작이 글로벌 마케팅을 하겠다는 것인데 결론부터 말하겠다. 수출 가능성은 우리가 명품이란 부른 것만큼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다큐멘터리 수출의 최전선인 유럽과 북미 그리고 오세아니아 지역으로 판매될 가능성은 지극히 적다. 혹자는 중국 동남아 중동 지역의 가능성을 이야기 하겠지만, 이들 국가에 팔릴 수는 분명히 있겠지만, 우리가 주지해야 할 것은 실제 수출 금액이다. <아마존의 눈물>의 총수출 금액은 결코 5천만 원을 넘지 못할 것이다. 제작진들의 월급과 장비 등을 합치면 적어도 그 제작비가 20억 원은 넘어서는 다큐멘터리 3부작이 5천만 원의 수출을 하겠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필자의 이러한 단언은 국민 명품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실제 수출 시장을 고려한 예측이다. 이미 우리는 몇 년 전부터 명품 다큐멘터리를 TV에서 시청했다. KBS의 <차마고도> <누들로드>, MBC의 <대황하> <북극의 눈물> 등이 바로 전 국민적인 명품 다큐멘터리다. 국내 방송을 통해선 상당한 호평을 받았던 작품들이다. 그러나 이들 명품 다큐멘터리들이 외국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는 말만 들릴 뿐 ‘얼마에 수출됐다’는 구체적인 수치 언급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단지 있다면 EBS의 <한반도의 공룡>뿐이다.

“EBS 다큐멘터리 '한반도의 공룡'이 국내 다큐멘터리 사상 최고가에 수출됐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KBI)은 지난달 프랑스 칸에서 개막된 국제영상프로그램 박람회에 참가한 EBS가 독일의 디즈니 채널 운영사인 알티엘디즈니에 2부작 '한반도의 공룡'을 총 10만 달러 이상에 판매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1일 밝혔다.” 이 보도는 작년 4월에 나온 것이다. 10만 달러면 지금 환율로 약 1억2천만 원이다. 그 당시까지, 즉 지난해 4월까지 한국 다큐멘터리의 편당 해외 판매 최고가는 2만5,000달러였다. 그 기록도 EBS였다. 그렇다면 KBS와 MBC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했다는 다큐멘터리의 수출금액은 도대체 얼마란 말인가? 위에서 언급한 것은 단일 계약의 사상 최고가다.
 

 

풍악은 요란했는데, 실제 잔치에 가보니 먹을 떡이 없다. 3년 전 심형래 감독의 <디워>는 관객 8백만 명을 동원했다. 하지만 그 요란하기만 했던 수출은 어떠했는지를 기억하고는 있는가? 수출 대참패였다. 국내 800만 명이란 관객동원으로도 건질 수 없었던 제작비를 수출을 통해 회복하리라 믿었건만, 외국의 관객은 <디워>에 시큰둥했다.

지금 한국의 방송가에 일고 있는 블록버스터 다큐멘터리 제작이 딱 그 모양이다. 방송사 내부인력의 인건비와 장비 및 기술 등을 빼고서라도 그 제작비는 12억 원부터 20억 원에 이른다. 방송사는 ‘적자는 면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주지해야 할 것은 그 ‘면했다는 적자의 실체’다. 보통의 다큐멘터리는 잘해야 삼방 정도에 머문다. 그런데 명품으로 각광 받는 다큐멘터리는 최소 6방에서 8방에 이른다.

‘적자를 면했다’의 실체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방송을 여섯 번 혹은 여덟 번에 걸쳐 재방함으로써, 그 시간대 제작비용과 광고비용을 벌충했다는 게 ‘적자는 면했다’것의 수준이다. 다시 혹자는 묻는다. “그래도 그렇게 여러 번 재방할 수 있는 것도 콘텐츠의 위력이 아닙니까?” 승자독식이라고 아는가? 재방을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림으로써, 다른 다큐멘터리의 방영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관 수를 독점하다시피 점유함으로써 우리의 영화계는 다양성을 잃고 있다. 그건 방송 역시 마찬가지다. 이게 바로 ‘승자독식’의 자본주의 시장 논리다.

명품 다큐멘터리가 ‘한국 다큐멘터리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는 헌정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미안하다. 그 헌정사는 취소되어야 한다. 대규모 제작비로 만들어지는 블록버스터 명품 다큐멘터리는 오히려 다양한 다큐멘터리의 제작 기회 및 방영기회를 독식하는 결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의 방송사라고 영국의 BBC, 미국의 NGC, 프랑스의 Arte, 일본의 NHK처럼 대형 다큐멘터리를 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렇다고 하여 얼토당토 않은 ‘명품’과 ‘인문’이란 훈장을 주는 것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시장의 논리에도 어긋나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지금 한국의 방송사들은, 이른바 속된 말로 '가오 세우기' 명분을 위해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그래도 관객동원이라는 구체적인 수치라도 있지만, 방송은 사실상 측정치일 수밖에 없는 시청률로 시장의 독식을 말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파트 값이 고속상승을 한다 하더라도 오른 것만큼 아파트 주인에게 현금으로 당장 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필자가 제작자로 나선 다큐멘터리 영화 <신의 아이들>은 전체 제작비가 3천만 원이다. 그런데 수출 계약과 해외 공급을 통해 얻은 수입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3천5백만 원이다. 앞으로 적어도 1천만 원 이상은 들어올 것으로 본다. 그리고 저주받은 걸작으로 알려진 5부작 다큐멘터리 <인간의 땅> 가운데 박봉남 독립PD가 연출한 ‘아이언크로우즈’는 2억원의 비용으로 3년 동안 제작된 작품이다. 다시 말한다. 3년 동안 2억 원의 제작비다. 여기엔 제작사 비용과 연출자 촬영감독 기술팀 장비사용료 현지제작비 후반작업비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그 2억 원으로 3년 동안 제작한 것이다. ‘아이언크로우즈’는 지난해 말 다큐멘터리의 최대 축제인 암스테르담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상, 본선 진출도 처음이거니와 대상 수상도 처음이다. 이후 두 달 동안 ‘아이언크로우즈’는 10개의 중요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 지금까지 수출계약을 맺은 금액만 해도 1억 원에 이른다. 또한 한 달 뒤면 미국의 뉴욕 비평가 그룹이 진행하는 극장 개봉을 하게 된다. 

국내용으로만 머물 수밖에 없는 한계를 태생부터 안고 있었던 작품이지만 <워낭소리>는 3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이충렬 감독은 방송가의 독립PD다. 극장 개봉 과정에 들인 제작비를 제외하면 촬영과 후반작업에 들어간 제작비는 1억 원 안팍으로 알려지고 있다. 촬영기간만 3년이다. 그 사이 이충렬 감독이 겪어야 했을 고충은 눈물을 쏟는다. 다달이 통장에 채워지는 월급 그리고 출장료와는 거리가 먼 제작기간이다. 이는 암스테르담 대상에 빛나는 박봉남 독립PD, 그리고 <신의 아이들>로 세계적 감독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승준 독립PD 역시 마찬가지다.

단언하지만 다큐멘터리 영상 콘텐츠의 수출 시장에서 실제적인 성과를 가져오고 있는 방송사는 EBS 하나 뿐이다. 그리고 독립PD들의 작품이다. 그나마 독립PD들의 작품이 최근 글로벌 마켓에서 성가를 올리는 것은 방송사가 독점해왔던 저작권을 확보할 수 있었던 데서 비롯된다.

"이 놀라운 영화가 이룩한 가장 중요한 성과는 아마도, 짓눌린 빈곤의 끝없는 순환에 갇혀있는 우리 영웅들의 용기와 존엄성, 그리고 삶을 대하는 겸허한 태도일 것이리라. 이 영화는 고통으로 빚어낸 걸작이다." 지난해 암스테르담 영화제에서 어떤 작품에 대해 내린 심사위원들의 평가다. 그 작품은, 월급이란 것 조차 모른 채 제작진의 모든 인건비까지 포함된 2억원의 제작비로 3년 동안 제작된 강경란 박봉남 PD의 <아이언 크로우즈>다. 자 묻는다. 누가 국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가? 고통으로 빚어낸 걸작들이 이제 독립PD들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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