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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docu story

핵 원전(原電)이 필요없는 여자, 무토루이코

by 에밀레 2012. 4. 23.

 

원전(核原電)이 필요 없는 여자, 무토 루이코

 

방사능 오염은 차별이 없다. 모두에게 평등한 위험이다. 지난 2012년 3월 11일 동일본 재난 1년이 지났지만 원전피난민 일본인들은 여전히 핵원전(原電)의 불안한 봄을 맞았다. 현재 일본은 외부피폭보다 내부피폭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먹거리를 걱정하고 아이와 임산부의 지속적 피난대책이 필요한 실정이다. 지난 3월11일, 다큐멘타리 제작을 위해 핵원전 반대 집회가 열린 동 일본 고리야마를 다녀왔다. 현장에서 올해 60세인 무토 루이코를 만났다. 여전히 방사능과 동거 아닌 동거를 하는 무토 루이코, 현재 후쿠시마에 거주하는 주민이자 주부활동가인 그녀는 여전히 피폭을 당하며 살고 있다. 그녀는 후쿠시마 원전 1호기 가동 40년을 맞아 폐로 후를 생각하자는 폐로액션 활동 준비를 하다가 3.11을 맞았다. 원자로 자동정지, 안심하라는 TV보도와 달리 그녀는 쓰나미가 계속 높아지자 원전피해가 오겠다는 생각을 했다. 원전 반경 3Km 지점까지 피난 요청하는 자막이 그날 저녁 나왔다. 만약에 모르니까 피난하라는 것이었다. 원전 60km 지점에 있었던 그녀는 친구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그날 저녁 눈 내리고 있는 산을 넘어 서쪽으로 피난을 시작했다.

그녀는 체르노빌 이후 “스스로 할 수 있는 탈원전”의 삶은 무엇인가를 실천키 위해 후쿠시마 산속에 2003년 찻집 “키라라”을 열고 에너지 자립 생활방식으로 살았다. 후쿠시마 산속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탈원전의 삶을 살면서 부터 그녀는 장화를 신은 여자로 불렸다. 그녀는 장작을 패고 등잔을 켜고, 산속 시냇물로 밥을 짓고 목욕을 했다. 허나 지금은 산을 개간하고 땅을 일구며 채소를 기르고 태양에너지로 살림을 꾸렸던 삶 자체를 전부 잃어버렸다. 찻집 키라라도 방사능 오염 문제로 문을 닫은 상태다. 그녀가 25년 전부터 물었던 “탈원전의 삶은 무엇인가” “탈원전은 가능한가”의 질문은 우리의 생활 양식을 어떻게 변화 시킬 수 있는가와 맞닿아 있다. 원전사고 1개월 후, 원전 사고 45km 떨어진 산속 찻집 키라라에 다시 돌아와 살고 있다. 3.11로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지금이라도 새로운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동일본 재난 1년 후인 3.11일, 코리야마 야구장에 원전난민들 2만 명이 모였다. 일본 전역에서 온 이들과 동일본 재난지역에서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누구나 고통과 아픔이 있는 이들이 죽은 자의 고통을 끌어안고 있었다. 무토 루이코는 원전난민들이 모여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고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들의 가장 큰 고민은 중 하나는 아이들이었다. 원전 난민 부모 자신들은 이미 피폭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르다. 아이들을 위한 캠프를 알아보기 위해 많은 상담자들이 몰렸다. 전문가와 원전난민들, 그들이 소통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자리는 가족과 아이들이 헤어지는 이산의 아픔이 있는 자리였다. 이러한 이들의 가장 깊은 고민은 무엇일까? 원전난민으로 가족과 집을 잃은 것보다 미래의 불안이었다. 현재 이들 삶은 오늘보다 내일의 불안 속에 있다. 이미 원전 안전 신화는 무너졌다. 원전 비상대피 계획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일 년이 지나도록 방사선으로부터 시민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원전 사고의 가장 큰 고통을 감내하는 십여만 사람들의 삶을 책임을 져야할 보상법 제정 기준도 없다. 그 기준치를 만드는 것조차 민간과 정부의 오랜 갈등으로 표류할 것이 농후하다는 것이 이들의 불안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일터, 이들은 후쿠시마 원전 핵폐기물을 처리하는 익명의 근로자들이다. 원전 사고 당시 핵폐기물을 처리하러 들어갔던 작업자들은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후쿠시마 위험 지역에서는 매일 밤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노숙자였던 이들은 많은 수당을 지급하는 오염제거 작업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일하고 있다. 모두가 떠나간 지역에 여관촌이 늘어나 이들의 거주지가 된 기이한 도시가 되고 있다. 무토 루이코가 살고 있는 후쿠시마에서는 아직도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센다이, 후쿠시마 등 동일본 재난 지역들은 지난 1년간 자위대, 미군 지원 등의 복구 작업으로 점차 제 기능을 찾아가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교토 세이카 대학, 야마다 교수는 일본에 방사능 제거 전문가가 한 명도 없다고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방사능 오염 제거의 심각한 실정을 드러낸 것이다. 후쿠시마의 집, 돌담, 기둥에 들러붙은 세슘은 아예 걷어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문제는 30년이 지나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고 했다. “원자로 시한폭탄”을 쓴 저자 히로세 타카시, 그는 20년 전 이미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가능성을 정확히 예측했다. 그러나 당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는 최근 원전 사고 직후, 주간 아사히에 3월 -8월까지 기사를 정리해 책을 냈다. 그가 지난 1년간 아사히 신문을 모니터링한 자료들을 보면 250킬로미터 반경 수도권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 강제피난구역에 해당하는 고농도 방사능이 검출되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체르노빌 8분의 1 수준이라는 거짓말로 일관했다. 2012년 11월 15일자 아사히 신문은 일본, 남부 규슈 일부 지역 제외 전지역 방사능 오염 거의 확실하다고 전했다.

3.11 일본의 현장에는 독일 의원들이 꼭 참석해 있다. 독일은 이미 “원전제로” 탈원전을 선언했다. 핵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한 독일은 에너지자립 마을이 100개 이상이 된다. 세계 1위의 재생에너지 기반을 만들면서 원전 때보다 고용 인원도 10배가 늘어 70만 명이 종사하고 있다. 녹색당 부대변인 베베르혜인은 독일이 탈원전 할 수 있었던 배경과 그들의 구체적인 재생에너지 방안을 소개하며 원전 난민들을 지원하고 있다. 체르노빌과 독일은 약 1,110km, 후쿠시마와 한국 역시 1,100km 거리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떨까? 고리원전은 수명이 연장됐다. 고리1호기가 차지하는 전기는 1퍼센트다. 1퍼센트의 전기를 줄이는 생활의 변화가 우리에게 필요한지 이미 오래 되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의 60%는 핵 에너지 원전에 대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유출된 방사선의 양, 거주지를 이전해야만 했던 사람들, 광대한 토지의 오염, 이런 고통 속에서 사는 무토 로이코. 그녀는 나는“원전이 필요 없는 여자”다 라고 말한다. 후쿠시마 산속으로 돌아가 그녀가 다시 찾을 희망은 무엇일까. 채소 한 씨앗도 뿌릴 수 없는 봄을 맞이한 1년, 그 이후부터 시작된 그녀의 삶은 당장 폐기 할 수 없지만 기로에 선 핵 원전문명에 대한 고찰과 우리가 찾아야할 재생 가능 에너지의 삶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문제이다. 핵에너지를 팔고 핵 안보 정상회의가 열린 이 나라에도 핵 안전 신화는 절대로 없다. 문명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단 한 가지라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자 했던 무토 루이코. 어김없이 시간은 벚꽃을 재촉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봄은 아직 침묵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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