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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docu story

후네히키 사람들

by 에밀레 2012. 9. 6.

후쿠시마현 원전폭발 40km 지점의 다무라시(田村) 후네히키(船引). 




원전폭발 1년 5개월이 지나는 현재 그들은 방사능 오염에 매일같이 먹고 마시는 일상생활을 걱정해야 한다. 어찌 보면 숨 쉬는 것조차 위협받고 있다. 가족의 건강과 생존을 지키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 오염의 실질적인 위험은 커지고 있다.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 마을 산속으로 들어가 키라라 찻집을 냈던 무토 루이코. 그러나 이제는 생존의 위협을 매일 겪어야만 한다.


토 루이코, 그녀가 괭이질을 해서 세웠던 첫 오두막.


  


촬영하는 동안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카메라에 앉았다. 반갑지만 이 녀석도 어디선가 오염되었을지 모른다. 그녀가 사는 집 주변에 붉게  피운 칡꽃이 늦여름 햇볕에 향기도 없이 마르고 있었다. 벌과 나비가 날아다니며 이 꽃 저 꽃에서 여전히 자연의 생명살이를 이어가고 검붉게 익은 체리를 한 가득 땄지만 어느 것 하나 선뜻 손 내밀 수 없는 것들이다. 세슘 측정을 하지 않아도 오염된 흙과 땅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저 것들에게 고개를 떨굴 뿐이다.     

        

  







내가 만난 유기농 농부였던 이시히씨, 농사를 포기하고 세슘과 방사능 오염으로 부터 아이들과 가족을 지키려하지만 현실적인 위협은 도처에 퍼져있다. 이 날 누군가 가져온 쌀을 측정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지원 받은 방사능 측정기는 매우 고가의 장비였다. 흙은 30분 정도, 쌀은 20분 정도면 방사능 수치가 나온다. 이시히씨는 농부였기에 오염되지 않은 2년 동안 먹을 쌀이 있다. 2년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물었다. 그 때 떠나야 할 준비를 한다며 웃었다. 그가 그나마 웃음을 잃지 않은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동안 자신이 측정했던 자료를 그 자리에서 메일로 보내줬다. 편리의 이기는 욕망을 낳는다. 그 욕망의 끝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가고 있다.  




   스즈키씨는 장애인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신체가 보통 사람보다 약한 아내의 먹거리는 더 큰 걱정거리다. 후쿠시마에서 멀리 떨어진 큐슈나 북해도에서 온 것들로 밥상을 차린다. 후쿠시마 부흥을 위해 현지 농산물을 소비하자는 운동이 일고 있지만 절대로 먹어서는 안된다고 귀뜸한다. 무토루이코가 준 수돗물을 먹었는데 상수도 물은 괜찮냐고 물었다. 일본 정부가 정한 세슘 기준치보다 낮아서 안전하다고 하지만 방사능, 세슘 등 수백가지의 방사능 물질을 알지 못하고서는 안전치 않다고 말한다.  이 부부는 올 가을 살림을 옮길 예정이다. 아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방사능 측정기를 이들 부부는 가지고 다닌다. 그리고 매일 저녁 기록을 한다. 아내보다 여러 곳을 다니는 남편의 수치가 높다. 





 이시히와 스즈키씨.  이 둘은 시민단체 활동을 한다. 사람들이 가져오는 음식물과 물을 무료로 방사능 측정해 준다. 스즈키는 일본 여러 지역으로 나가 흙을 가져와 방사능 측정을 하고 데이터를 축적한다. 이들이 사는 후네히키의 농토와 거리, 아이들 학교 수영장의 물, 후네히키 역전 앞의 도로 등을 측정한 세슘과 방사능 오염은 매우 심각하다.  길에서는 그저 흙으로 보이는 오염 땅을 아이들이 밟고 다닌다. 자건거도, 자동차도 사람도 이동하는 것들 모든 것이 오염전달자가 될 정도이다. 이들과 함께 무토 루이코가 사는 키라라 찻집 주변을 측정했다. 기준치의 8배, 10배가 넘는다. 이들은 왜 이곳으로 다시 들어 온 것일까. 다른 이주지역에선 먹고 살아야 할 경제적 생존 거처가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후쿠시마 원전폭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충격적인 현장만이 보여지고 기억될 뿐이지만 후쿠시마 1년 반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실질적인 위협과 위험으로 변했다.  후네히키 사람들의 위험한 시간과의 동거는 결국 떠나거나 남거나 생존의 문제가 더욱 깊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