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큐/docu story

후네히키 사람들 2

by 에밀레 2012. 9. 8.

후네히키에는 원전 피난  임시 공동주택이 지어졌다.  원전 30km 이내  사람들이 피난해 44가구가 살고 있다.  한 마을 사람들이 1천가구 이상 모여 사는 다른 지역에 비하면  이곳 임시 공동거처는 매우 작은 규모이자 여러 피해지역 사람들이 모여사는 특이한 곳이다.  이곳에서 얼마 전 고독사가 있었다. 그 사고 이후 이들 거처 문 앞에는 노란 깃발이 걸려있다.  저녁에 거둬들이고 아침에 내거는 깃발이다.  밤새 안녕했다는 표시다. 

   




각자 사연도  다른 원전피난민들의 이야기를 한 자리에 모여서 들었다.  그런데 피난 이후 이들은 한 번도 한 자리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 같았다.  문 열면 바로 이웃한 이들이 1년 반 동안 살았는데 처음듯는 이야기처럼 서로의 사연에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고독사 말을 듣고   그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렵고 힘들었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눌만한데 여지껏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던 그들을 보면서 고독사가 이런 특별한 주거 상황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1.3월11일. 그날의 개인적인 사정에 따라 겪은 상황은 모두 다르다.  그러나 원전폭발로 자신이 살던 거처를 떠나야 했던 것은 같다. 후네히키 임시 거처 공동 주택에는 원전 5km 지점에 살고 있었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선택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3월 11일 밤 무조건 트럭과 버스에 태워졌고 내려진 곳이 다무라시 후네히키였다. 그 날 이후  이들의 삶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원전 5km 지점에 살던 이들이라 대부분의 가족과 친인척들이 직간접으로 원전에 기대어 살았다.  누구보다도 원전에 대한 기대로 살았고 한번도 원전이 폭발할거라고는 단 한번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3월 11일 재앙의 날은 왔다.  그 날 낮에 이들은 원전에서 수많은 버스가 이동하는 것을 봤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채 원전에서 일하는 근로자와 책임자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쳐다봤을 뿐이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옷가지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무조건 차에 타라는 말을 듣고 피난한 곳이  후나히키였다.   




     

원전폭발 20km 지점, 후타바로 가는 길은 통행금지되었다. 오사카에서 차출된 경찰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준다. 통행증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 후네히키 이주민들은 일시 통행허가증을 내 자신이 살던 집에 가서 미처 가져오지 못한 살림살이를 가져나온다. 한 번 들어갈 때 마다 350명이내에서 제한된다. 이번에 4번째 들어갔다가 올 거라는 그녀 역시 살림을 챙기러 간다고 신청했지만 가지 못하는 집, 돌아가지 못하는 마을을 보러 가는 것이다.    






 원전 폭발 30km 지점이 되자 차차 마을의 길과 집은 그대로인데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늦여름비가 억수로 퍼부어대는 길을 달려 점점 원발 지점과 가까워질수록 논은 무성한 잡초지로 변해있었다. 주변의 숲과 나무는 푸르게 울창하고 가끔씩 굽어지는 개울도 보인다. 예전 같았으면 여름비를 맞으며 누군가가 열심히 물고를 내고 벼를 보살폈을 풍경이 보였을 것이다. 원전 재앙의 농토는 완전히 변해 있다. 한 여름 잡초지로 변해있는 땅은 그렇다치더라도  새까맣게 죽은 땅에서는 뿌리 내리다 죽은 것들이 그대로 보였다. 원전 피난민 그녀들은 말했다. 절대 안전하지 않다. 누구보다도 원전을 믿었고  경제생활의 근거처였던  원전은 "절대로 안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내년 3월이면 모두 임시 피난 공동거처를 떠나야 한다. 정부에서 마련한  2년이라는 한정된 임시공동처이기 때문이다.         

'다큐 > docu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로부두르 트레일러 작업1  (0) 2013.06.03
보로부드르의 청년  (0) 2013.05.20
후네히키 사람들  (0) 2012.09.06
핵 원전(原電)이 필요없는 여자, 무토루이코  (0) 2012.04.23
대장경로드 제작기  (0) 2012.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