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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docu story

다큐를 만드는 일(친구의 블로그에서)

by 에밀레 2009. 3. 23.

모처럼 극장에서 워낭소리라는 다큐멘터리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들에서 화제가 되었고 대통령까지 가서 보았다니 성공 중에서도 큰 성공이다. 축하할만한 일이다.

다큐멘터리는 돈 안 되는 일이라는 사람들의 인식이 갑자기 달라졌다. 떼돈을 벌 수도 있는 일이 됐다.

그러나 그런 성공은 우연이다. 나라 안팎 어느 곳에서나 다큐멘터리는 인기가 없다. 사람들은 현실을 피하려하지 현실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바라보려하지 않는다. 쓴 약 보다는 사탕이 더 필요하다.

그나저나 이 참에 오래된 질문 하나를 꺼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가?”

내가 만드는 다큐멘터리는 인기가 없다. 더러는 완성도도 형편없다. 그도 그럴 것이 제작비가 없으니 직접 기획하고, 섭외하고, 찍고, 편집하고, 원고 쓰고, 때로는 나레이션 더빙도 한다.

달라이라마나 틱낫한과 같은 화제의 인물이 중심인 내용이 아니면 세간의 관심도 없고 틀겠다는 미디어도 없다. 구걸 비슷한 섭외를 해야 겨우 방송될 뿐이다.

다큐멘터리가 내게 돌려주는 돈은 한 푼도 없다. 제작비를 만들며 찍어야 하니 돈 드는 일이지 돈 버는 일은 아니다. 이런 작업방식을 보고 일전 대화를 나눈 어느 스님은 한마디로 표현한다. “보살은 철이 들지 않는 법이래. 철이 들면 보살이 아니라지.” 내가 보살은 아니니 날 더러 철이 없다는 소리를 에둘러 한 것이다.

그래도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편집기 뒤에 쌓여있는 백여 개의 촬영중인 테잎을 보면 부담과 강박증을 느끼긴 해도 이 작업이 고행도 아니고 못할 일도 아니다. 큰 의무감에 시달리지도 않는다. 그냥 만든다.

대학원을 다니다가 처음 갖게 된 직업이 방송과 관련된 일이었다. 그러다가 케이블텔레비전이 생기면서 제작 프로듀서로 일하게 됐다. 여러 가지 곡절과 아이엠에프 사태가 터지면서 직장을 그만두었다. 별로 돈 안 되는 이런저런 일을 하게 됐는데,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았다.

그 때 조금만 더 잘했으면… 하는.

그 후회를 이기기 위해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십 년이 넘게 카메라를 잡고 찍고 글을 쓴다.

내가 보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만든다. 나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만든다. 그것이 창조적인 작업이라 믿기에 만든다.

재작년 다람살라에서 한 달 넘게 살면서 촬영한 적이 있었다.

 어느 저녁 티베트 친구가 하는 카페에 들렀다가 인상 깊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우리나라에는 책으로 잘 알려진 ‘히말라야를 넘는 아이들

 

 

작가의 시선은 세상의 눈길이 닿지 않은 곳을 비추고 있었다.

그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연출한 마리아 블루멘크론이 몇 명 안되는 관객과 함께 자신의 다큐멘터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저 그렇게 살아가던 여배우가 사진 한 장에 충격을 받아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되고 작가가 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국에서 온 동업자에게 그가 건네 준 말 한마디는 이렇다.

“결코 포기하지 맙시다.”

그렇다 포기할 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내가 본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면 되는 것이다.

카메라를 들고 베트남이나 스리랑카, 혹은 인도의 어느 마을을 향해 떠날 때면 늘 떠오르는 말이 있다.

리들리 스코트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에서 죽음을 앞둔 리플리카 로이 베티가 자신을 쫓는 데커드를 살려주면서 했던 대사이다.

“나는 너희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지. 오리온 별 옆에서 타오르던 전함. 탠하우저 게이트 근처에서 어둠을 가로지르던 불 빛.

이 모든 순간들은 시간 속으로 사라지겠지. 비 속의 내 눈물처럼…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야.”

그런 비감함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과 생각해 볼만한 무엇을 떠올리며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그 빛나는 순간이 시간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찍는 것이다.

 

사족 (글을 쓴 진짜 이유 )

안부의 연락 한마디 없던 후배로부터 한 밤중에 갑자기 전화가 왔다. 전 직장에서 잠시 함께 일하던 촬영감독이다. 속보이는 사탕발림으로 너스레를 떤 후에 꺼낸 말은 심장을 후벼판다. 회사에서 전파진흥원의 프로그램 제작지원금을 받기 위해 기획안이 필요한데 써달라는 것이다. 내가 현재 작업중인 주제의 기획안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자신들이 돈을 받아 제작할 테니 그냥 써주면 안되겠느냐는 요청이었다. 며칠간을 끈질기게 전화를 했다.

기획안은 아무런 투자와 고민 없이 나오는 것인가 보다. 머리에 든 무형의 자산은 공짜로 퍼주길 바란다. 그 회사는 작년에도 한 편의 기획안을 뺏아 갔었다. 가소롭다.

왜 이런 무례한 청을 들어야 하나 생각해보니 내게 힘과 돈과 권력이 없어서였다. 말이 길어졌지만 내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힘과 돈과 권력이 없기 때문에… 힘과 돈과 권력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그것들만 가지고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찾아서…

 

김천의 블로그:http//www.sattva.kr 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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