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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docu story

침묵의 유산, 아버지의 전쟁

by 에밀레 2009. 3. 23.

침묵의 유산, 전범 사형수 아버지의 전쟁을 찾는 2인

한국인 전범 아들과 일본인 전범 아들의 동행과 만남

무관심과 망각 속에 던져두었던 아버지의 전쟁범죄는 무엇이었는가.

 

       올해 71세인 강도원씨는 한평생 “아버지가 태평양 전쟁 범죄자였다” 는 사실만을 알았을 뿐, 아버지에어떤 일이, 왜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 그 구체적이고 세세한 사실을 알 수 없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말 할 수 없었고 숨길 수밖에 없었던 침묵의 유산처럼 물려받은 친일과 전범의 아들이라는 피해의식은 아버지의 존재를 무관심과 망각 속에 던져두게 했다. 2006년, “조선인 전범자”가 “강제동원희생자”로 인정되었지만, 그는 “아버지의 전쟁범죄는 무죄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아버지의 전쟁 재판 기록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지닌 채 영국재판 기록 속의 아버지의 진실을 찾았다.


 

전후, 일본전범 2세 고마이오사무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일본인 전범 고사이 마쓰오의 아들인, 고마이 오사무.




그도 역시 전쟁범죄자로 처형된 아버지의 행적을 찾아다녔다. 그의 아버지는 부산에 주둔했던 노구치 부대에서 아들에게 엽서를 띄우기도 했다. 아버지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던 유년시절, 그리고 전범의 아들로 살아온 그는 늘 일본이 전쟁에서 진 것을 후회하고 원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후 전범의 아이로 자라며 아버지의 존재를 감추고 살아온 것은 한국인 전범의 아들과 마찬가지였다. 그도 역시 침묵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전범의 아들”이라는 죄의식의 그늘과 압력이 늘 따라다녔다.


                                   강태협과 고마이 미쯔오
                            그리고 이학래...  66년의 세월을 넘어서   
 


      강태협과 고마이마쯔오, 이학래. 이들은 태면철도 포로수용소에서 근무했다. 한사람은 일본군 장교로 강태협과 이학래는 한국인 포로감시원으로 각기 분견소는 달랐지만 전쟁의 가해자로 전쟁범죄자가 되었다.

      고마이 마쯔오는 상부의 명령을 받고 조선인 포로 감시원에게 영국군을 가해토록 명령을 내렸지만 조선인 포로감시원이 제대로 실행을 못하자 영국군을 구타해 죽였다. 강태협은 명령받은 대로 영국군을 구타하고 구타치사해 그 죄가 인정되어 처형당했다.
이학래 역시 호주군을 구타해 전쟁 범죄자가
되어 사형언도를 받았다가 무기형으로 감형되어 살아났다. 이들의 전쟁범죄는 명백히 드러난다. 그러나 이들을 통해 죄가 있다. 없다가 아니라 왜 이러한 전쟁범죄와 사건이 일어났는가. 무엇을 추궁할 것인가. 처벌된 일본 전쟁 범죄는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천황의 전쟁범죄가 면죄된 자리에는 한국인 전범들이 겪어온 고통의 역사가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다. 한국인 BC급 전범이 비록, 한국정부에 의해 “전범의 죄”가 “무죄”처럼 느껴지는 강제동원희생자로 인정되었지만 그것은 그만큼 이중삼중으로 차별받았던 역사의 고통을 말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66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神의 군인으로  그 영혼이 해방되지 못한 한국인 전범들의 전쟁과 전쟁범죄. 한, 일 어느 쪽에서든 악의 이미지가 따라다녀야 했던 전쟁범죄란 무엇인가, 누가 무엇을 단죄했는가? 라는 질문은 그동안 무관심과 망각 속에 버려두었던 한국사회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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