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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docu story28

재일 민족학급 문득, 오사카 재일 민족학급 아이들 생각이 났다. 2000년도에 제작했던 재일 민족학급. 민족학급은 일본공립학교에서 우리 민족의 글과 말을 배우는 방과 후 특별 수업을 일컫는 말이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1,2학년 아이들과 3,4학년 아이들이었다. 우리 초등학교 나이로 치자면 10살, 11살 이었다. 그 후 9년이 지났다. 이제 이 아이들은 18살에서 20살 청소년기를 거쳐 이제 성인이 된다. 이 아이들은 어떻게 자랐을까. 어느 쪽이 더 좋죠? 이 아이는 3학년, 이름은 김봄이다. 일본 이름은 아유미. 일본 이름과 한국 이름을 쓰는 아이들. 어릴적 부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자라야 하는 아이들이다. 사춘기를 넘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을 하면서 자랐을까. 기타쯔루하시 초등학.. 2009. 4. 19.
다큐를 만드는 일(친구의 블로그에서) 모처럼 극장에서 워낭소리라는 다큐멘터리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들에서 화제가 되었고 대통령까지 가서 보았다니 성공 중에서도 큰 성공이다. 축하할만한 일이다. 다큐멘터리는 돈 안 되는 일이라는 사람들의 인식이 갑자기 달라졌다. 떼돈을 벌 수도 있는 일이 됐다. 그러나 그런 성공은 우연이다. 나라 안팎 어느 곳에서나 다큐멘터리는 인기가 없다. 사람들은 현실을 피하려하지 현실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바라보려하지 않는다. 쓴 약 보다는 사탕이 더 필요하다. 그나저나 이 참에 오래된 질문 하나를 꺼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가?” 내가 만드는 다큐멘터리는 인기가 없다. 더러는 완성도도 형편없다. 그도 그럴 것이 제작비가 없으니 직접 기획하고, 섭외하고, 찍고, 편집하.. 2009. 3. 23.
침묵의 유산, 아버지의 전쟁 침묵의 유산, 전범 사형수 아버지의 전쟁을 찾는 2인 한국인 전범 아들과 일본인 전범 아들의 동행과 만남 무관심과 망각 속에 던져두었던 아버지의 전쟁범죄는 무엇이었는가. 올해 71세인 강도원씨는 한평생 “아버지가 태평양 전쟁 범죄자였다” 는 사실만을 알았을 뿐, 아버지에게 어떤 일이, 왜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 그 구체적이고 세세한 사실을 알 수 없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말 할 수 없었고 숨길 수밖에 없었던 침묵의 유산처럼 물려받은 친일과 전범의 아들이라는 피해의식은 아버지의 존재를 무관심과 망각 속에 던져두게 했다. 2006년, “조선인 전범자”가 “강제동원희생자”로 인정되었지만, 그는 “아버지의 전쟁범죄는 무죄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아버지의 전쟁 재판 기록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 것일.. 2009. 3. 23.
나는 조개가 되고 싶다 의 의미를 알려면 전범들의 평화운동을 이해해야 합니다. 전쟁범죄자가 된 사람들이 일본의 스가모 형무소로 이감되어 전범의 잔형을 치루고 있을 때 한국전쟁이 일어납니다. 일본은 재군비를 서두르지요. 이때 스가모형무소에서 일본의 재군비를 비판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는 이 시기에 나온 일본인 전범 가토 테츠타로의 라는 유서입니다. 가토테츠타로는 시무라이쿠오라는 필명으로 나는 조개가 되고 싶다라는 수기를 씁니다. 그가 쓴 수기의 조개의 의미가 담긴 부분을 소개할께요 천황은, 나를 도와 주지 않았다. 나는 천황의 명령으로서, 얼마나 싫은 명령이라도 충실하게 지켜 왔다. 그리고 평소부터 항상 勅諭(천황의 가르침)의 정신을, 나의 정신으로 하자고 노력했다. 나는 단 한번도, 군무를 게으름 피운 적은 없.. 2009. 3. 23.